노동과 예술의 달콤 쌉싸름한 동행, 금천구 독산본동 반수마을
시간의 춤
‘반수마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금천구 독산본동 남문시장 주변이 반수마을이라고 합니다. 반수마을은 ‘반시’의 변음으로, 마을 모습이 마치 대야에 담아 놓은 물처럼 고요하여 조용한 마을이란 뜻으로 불러진 것이라고 하네요. 그러나 ‘반수마을’에 대한 저의 첫인상은 그것과 전혀 다릅니다.
모든 시장이 그렇듯 남문시장은 물건을 구경하는 사람들과 학교로, 집으로, 회사로 시장길을 통과해 이동하는 사람들이 어지럽게 뒤섞이고, 물건의 값을 매기고 이를 치르려는 사람들의 흥정소리로 가득한 곳입니다. 상인들은 한 시도 쉬지 않고 진열된 상품을 매만지고, 지나가는 어느 사람도 앞만 보고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구로공단은 구로디지털단지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수출의 다리’는 여전히 금천구의 상징입니다. 대형 아웃렛 매장들이 위풍도 당당하게 들어선 그 이면에는 여전히 골목 곳곳으로 의류, IT 등 소규모 작업장과 공장들이 즐비합니다. 소규모 작업장에서는 생산일정에 맞추려는 열띤 기계소리가 윙윙대고, 그 주변으로 한 두 사람 겨우 누울 수 있는 작은 쪽방들이 촘촘히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구로공단이 들어서면서 영등포구에서 구로구로 행정구역이 분리되고, 또다시 서울시 지역발전계획에 따라 구로구에서 금천구로 분리되는 등 반수마을은 행정구역도 세 번이나 변경되었습니다.
‘신나는문화학교 자바르떼’ 경영지원실장 이은진(전 대표) 씨는 “금천구는 외곽에서 외곽으로, 주변부에서 주변부로 밀려나는 과정과 역사를 경험해온 곳이다”라며 “교육환경이 열악하고 문화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지역이었다”고 말합니다.
이토록 숨 가쁘게 일상이 돌아가는 마을이 있을까요? 이렇게 빠르게 변모해온 마을이 어디 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은 흘러 금천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지만, 사람들은 변함없이 일과 생활, 노동과 삶이 일치되어 흘러가고 돌아가며 마을에서 살아갑니다. 그 모두에게 마을은 일터이며 삶의 터전이고, 아이들을 키우는 생활공간이며 쉼을 위한 휴식처이자 안식처이지요.
그랬던 마을이 더 시끄러워졌답니다. 어느 날부터 남문시장 상인들이 때때로 일손도 멈추고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는데요. 도대체 남문시장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문화진원지, ‘신나는문화학교:자바르떼(Job+arte)’
문화적 인프라가 열악하고 문화예술 욕구도 저조했던 금천구에 어느 날 문화예술가단체가 생겼습니다. ‘신나는문화학교 자바르떼’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신나는 문화학교’는 소외계층을 위한 찾아가는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 사업의 이름이었습니다. 좋은 문화예술 프로젝트들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기 위해 고민하다가 ‘자바르떼’라는 문화예술단체를 결성하게 되었다네요. ‘자바르떼’라는 이름은 ‘일’ 혹은 ‘일거리’의 영어식 표현 ‘Job’과 예술의 이태리어인 ‘Arte’를 결합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과 안산, 인천 등의 문화예술가들이 주축이 되어, 문화예술 콘텐츠가 지역에 필요한 사람에게 맞춰 제공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방식의 문화예술일자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고민 끝에 단체를 만들게 되었답니다.
‘자바르떼’가 금천지역에 들어온 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 이전에는 서울, 안산, 인천, 부천 등 주로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노동자들이 일상과 일터에서의 생활이 분리되지 않도록 하고,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문화 활동들을 기획하고 교육하는 일들을 진행해왔습니다. ‘자바르떼’ 대표 이은진 씨는 “주민과 노동자들이 삶의 가치를 새롭게 만들고, 삶의 필요와 욕구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문화의 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던 중 ‘자바르떼’는 2010년 11월말 금천구로 사무실을 이전하게 됩니다. 지역을 좀더 활기찬 문화도시로 만들고 싶다는 지자체장의 의지도 한 몫 했습니다. ‘자바르떼’는 2달 동안 금천구 지역조사에 집중하는데요. 이은진 씨는 “가리봉부터 구로공단 그리고 소하리 기아자동차까지 시흥대로를 통해 지나가 본 적만 있지 골목 깊숙히 자세히 살펴본 적은 없었다”며 “독산동(반수마을)은 소위 ‘닭장집’ 이라고 불리는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삶의 모습들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2011년 당시 지역예술단체도 없고, 문화인프라도 열악했던 금천구에서 문화예술활동의 돌파구로 생각한 것이 바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원하는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 <문전성시 프로젝트> 입니다.
노동과 예술의 달콤쌉싸름한 동행, <문전성시>와 <예생프로젝트>
대형마트가 둘러싸인 속에서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금천구 독산3동 남문시장의 활성화를 위하여 ‘자바르떼’와 남문시장상인조합이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시장 상인들을 위해 일터와 휴식을 연결하는 다양한 참여형 문화 프로그램를 기획하고, 인근지역 주민들에게 문화예술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것이었습니다.
2011년 한 해 동안 <문전성시 프로젝트>는 문화워크숍을 진행하여 상인들의 의견을 모으고, 노래와 기타, 풍물, 미술 등 시장통 문화학교 및 상인 예술단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들로 진행됐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상인들의 활동들은 ‘신나는 시장 축제’와 ‘남문시장신문’을 통해 마을에 알려졌습니다.
물론 이 과정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습니다. 이은진 씨는 “경제적 활동과 관계없는 이런 문화예술활동 프로젝트를 상인들과 함께 진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많이 싸우기도 했다”고 말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활동을 지속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역시 마을 내 작은 변화의 조짐들입니다.
당장의 매출과 연결이 되지 않는다던 상인들이 풍물패 활동, 미술/노래 교육 등 문화예술 동아리 활동을 통하여 조금씩 변화하는 것이지요. 이은진 씨는 “상인들이 동양화를 그리거나 풍물 연습을 하고 나면 일주일의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말한다”며 “자신의 삶의 가치를 다르게 바라보는 작은 변화들이 보인다”고 말합니다.
연장선상에서 ‘자바르떼’에서 진행하고 있는 ‘예생네트워크’도 주목해볼만 합니다. ‘예생네트워크’는 예술가들과 시장 상인(생산장인)들간의 협업을 통해 예술적인 생산물들을 양산해내는 작업을 일컫는 말입니다. 하얀 두부 위에 적힌 한자에 주인아저씨의 철학을 담고, 김 포장지에 주인아저씨의 그간의 창작결과물들을 담아내는 것이 그런 생산품들입니다. 소소하고 평범하지요. 상인들과 예술가들의 5개월 간의 긴 논의 끝에 시장에서 팔리는 평범한 상품들이 예술적 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두부와 김, 떡 등 소소한 소비재들에 상인들의 철학이 담겨 판매되기도 하고, 소량맞춤으로 생산된 가방이나 옷 등은 따로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상인과 주민’ 혹은 ‘상인과 예술가’, 또는 ‘생산과 예술’, ‘노동과 문화’ 등 이질적인 것들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자원들을 발굴해 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마을의 다양한 자원을 발견하고 발굴하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마을에 대한 깊은 성찰, <남문탐험대> <마을탐방>
금천구는 이주민이 서울에서 세 번째로 많은 지역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노동과 생활이 일치된 공간이구요. 노인인구비율도 평균보다 높습니다. 아이들은 많지만 교육환경은 열악한 편입니다. 구로공단이 폐쇄되면서 빠져나간 자리를 중국교포들이 매웠습니다. 그래서 남문시장 주변에는 중국 상점도 많을뿐더러 시장 이용고객의 상당수가 중국교포들입니다. <마을투어>의 키워드가 이주, 노동, 생산인 것도 그 때문입니다.
‘자바르떼’는 작년말부터 ‘금천구마을투어v.0.5(산업전진기지 그이후 이주/생산/노동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금천구 마을지도’ 제작을 위한 마을투어 프로그램’을 시범운영하였습니다. 금천구에서만 30여년, ‘금천구 토박이’라 불리는 60대 주민이 가이드입니다. 마을투어는 수출공단이 있던 가산동 마리오아울렛에서 도보로 이동하며 금천구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옛날에는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숙소이자 쉼터였던 가정집, 그리고 현재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독산동 봉제공장 등, 자칫 지나치기 쉬운 금천구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해 보는 시간입니다.
또한 아이들이 바라보는 시장의 모습도 남다릅니다. 남문시장의 풍부한 자원들이 교육적 가치로 승화되고 이것이 초등학교 교과과정과 연결되었습니다. 남문시장은 문성초등학교 학생들에게는 통학길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배움의 장입니다. 남문시장에서는 이들을 <남문탐험대>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시장의 자원을 눈으로 귀로 입으로 느끼고 배웁니다. 시장과 경제, 지리, 사회 등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 단원들에 있는 교과목들이 시장의 자원과 연결됩니다. 오뎅을 빚는 손, 생선가게 아저씨의 눈웃음과 시장입구 이정표가 된 어르신의 노래 등 남문시장의 보물들을 찾아오는 미션을 수행하고, 지정된 물건의 가격을 알아오거나 부피나 용량을 재는 각 물건들의 단위를 알아오라는 과제를 받기도 합니다. 문성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로 시작된 <남문탐험대> 프로젝트는 반응이 좋아 금천구 다른 학교들에서도 진행이 된다고 합니다.
이은진 씨는 “아이들이 스스로 보물을 찾아보기도 하고, 시장을 깊이 들여다보고 상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알아내야 하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며 “아이들이 시장을 다르게 보고,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주민들이 다른 시선을 갖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일하는 일터이지만 지역주민들의 공공적 공간으로서 시장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죠. 금천구 반수마을에는 다양한 시선으로 마을을 바라보는 눈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꿈이 피어나는 ‘꿈다방’
반수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붑니다. 중국교포들의 중국어 강좌에는 20여 명의 한국 상인들이 수업을 듣습니다. 채소가게는 채소가게에서, 생선가게는 생선가게에서 필요한 중국어들을 알아가기 위해 개별 학습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 중국어 강좌는 녹음되어 남문시장 방송을 통해 방송되기도 하는데, 교육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인들은 이를 통해 교육을 받고, 이미 교육을 받은 상인들에게는 복습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풍물동아리에는 주민과 상인이 섞여 있습니다. 풍물의 신명 때문일까요. 풍물이 가진 집단성의 힘으로 풍물동아리는 가장 먼저 생겼고, 현재도 활동이 활발합니다. 풍물 연습 공간이 없을 때는 그늘 한 점 없는 야외 공터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연습을 하기도 한답니다.
<문전성시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남문시장 근처에 마련된 작은 공간 ‘꿈다방’은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에도 유지가 될 거라고 합니다. 상인과 주민이 함께 만드는 공동체를 목표로 남문시장 상인들이 계획을 세우고 운영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꿈이 피어나는 남문시장’, 문화를 통해 일상이 즐거운 시장에선 오늘도 그들의 일상과 꿈이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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